나의 전공 문화인류학 My Major Cultural Anthropology

현재 5년차 트레이너로서 일하고 있는, 나의 대학 전공은 문화인류학이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까지 합하면 7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느꼈던 문화인류학의 느낌을 보여주는 그림

사실 관심이 있어서 진학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그 당시 학교이름을 보고 지원했던 대학에서 학과를 보던 중,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듯한 학과소개페이지를 보고 결정했다.
그 당시에는 무언가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었고, 글로벌하게 노는듯한(?) 모습에 끌렸다.

그리고 실제로 진학해서 만나게된 문화인류학도 생각보다 재밌었다.
사실 홀로 자연속에서 살지 않는 이상,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것 중에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있을까?
고고학, 형질인류학, 정치인류학, 경제인류학, 영상인류학 등 내 상상보다 문화인류학이 커버하는 범위는 넓었고, 덕분에 다양한 세상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나의 전공 덕에, 고고학이나 인류학 등을 전공해야만 지원할 수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유해의 인종, 성별, 나이 등을 감식하는 감식병으로서 군복무를 할 수 있었다.

군복무 내내 감식병의 교과서 역할을 했던, 한국에선 '사람의 뼈'로 번역된 'The HUMAN BONE MANUAL'.

이렇게 전공과 군복무하며 배운 것들은 이후에 트레이너로 일할때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지만, 뼈대(기초)를 단단히 해놓는 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성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몸을 다루기에 앞서, 나는 말그대로 '뼈대'를 확실하게 익힐 수 있었고, 이후 트레이너로서 해부학, 운동역학 등을 공부할 때 남들보다 쉽게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너무 광범위하게만 느껴져서 막막했지만, 전공안에서 말고도 이렇게 타 분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학문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문화인류학과에 진학하고, 거기서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는 친구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던 것 같다.

(물론 문과답게, 공무원이 40%쯤 되지만 그래픽 디자이너, 방송국PD, 데이터 전문가, 바리스타, 기획자, 영업, 무역, 사업 등등 정말 다양하다)

덕분에 흔히 알고 있는 루트(대학원, 학예사, 연구소 등)외의 직업을 택하는데 큰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인류학을 그만두고서 현재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을까?

군복무 당시, 어쩌다보니 체단실(체력단련실, 헬스장)을 관리하게 되었다.
내 보직(유해감식)의 일을 하면서 추가로 할당된 임무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냥 귀찮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을 날림으로 하기는 좀 그래서, 대충 벽에 붙여 놓을 요량으로 인트라넷을 뒤져 운동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보면서 하나씩 직접해보고 다른 병사들을 알려주고 하다보니 어느새 운동에 재미를 붙였던 것 같다.

인트라넷에 양질의 운동정보를 업로드 해주었던 수방사의 병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군대안에서 뭔가 기운없어 보이던 친구들에게 운동을 알려주고, 그 친구들이 운동을 접하며 점점 밝아지는 모습에 인생처음으로 약간의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무언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여운이 길며, 가시적이었고, 즉각적이었다.

사람의 삶을 다루는 Tool 중에서 운동만큼 강력한 것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운동이란 Tool을 다루는 사람이 되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전역 후, 스포츠지도사2급 자격증을 취득하며 트레이너로서의 시작을 했다.

나는 인류학에서 빠져나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interviewee을 대하는 방법(인류학과 지역연구), 운동 관련 데이터를 다루는 법(양적조사방법), 회원들이 참고할 만한 영상을 촬영, 편집후 업로드하는 기술(영상인류학), 해부학을 위한 지식(형질인류학) 등 현장에서 너무나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또한 광범위하게 안다는 것은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엄청난 플러스 요소이다.
상대방과 공통된 무언가가 없다면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너무 비즈니스적인 대화는 벽을 만들수 있다.
그래서 상대방과 대화할 주제가 많다는 것은, 더 많은, 더 깊은 대화로 갈 수 있게 해주고, 이런 대화들로 상대방이 어떤 문화권, 어떤 직장에서, 어떤 habitus, 어떤 role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인류학 덕에 느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전에 배운 것들이 쓰이는 즐거운 경험은 이후에 다른 공부를 할 때도 나에게 그래도 남들보다는 공부라는 행위 자체에 약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예전에 수업중 교수님이 해주신 말이 있었다.
"인류학은 무궁무진하다. 게임이 대상이라면 게임인류학, 요리가 대상이라면 요리인류학.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것도 구태여 이름을 붙이자면 피트니스인류학? 피지컬트레이닝인류학? 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논문이라 친다면, 사회생물로서 인류에게 운동이 끼치는 영향? 운동이 개인의 사회역할에 끼치는 영향? 정도..?)

어쩌면 나는 인류학을 그만 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인류학을 찾고 있는 것 같다.